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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긋다/소설

[책추천]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feat. 2021 문학동네 송년키트)

by _geut.da 2022.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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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긋다입니다.

 

저는 얼마 전 2021 문학동네 북클럽에 가입하여 받은 송년키트를 열어보다가

 

생텍쥐페리 <야간비행>을 보내주셔서 연말은 지났지만 새해의 마음으로 새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어린왕자>만 읽어보았던 저로서는, 그의 이번 작품이 꽤나 신선했던 것 같아요.

 

어떤 하루의 새벽을 이 책과 함께 꼬박 지새웠습니다. 그 새벽의 기분이란..

 

함께 잔잔한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는 느낌. 밤의 할일을 같이 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야간비행>에서는 야간 비행을 통해 소포와 우편을 배달하는 일이 아직 무모하고 위험한 단계였을 때,

 

그 시작의 역경과 도전을 끊임없이 밀고 나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항공산업이 발달하기 위해 누군가는 필히 마주해야 했던 이별들과

 

캄캄한 밤하늘 사이로 끝없이 사라지던 존재들에 대해 가만히 생각하게 된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정말 많은 문장 아래 밑줄을 그었는데요

 

이들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감상을 적어보려 합니다.

 


#1. 어쩌면, 영영 도착하지 않습니다.

_

'시간이 생기면'이라는 말은 영영 우리에게 닿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밤에 모든 우편기가 안전하게 돌아오지 않듯이

우리의 시간과 인생과 순간들은 우리에게 언제라도 불시착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들은 최대한 열심히 가지려고 해야, 겨우 가질 수 있는 것들이겠지요.

아침이 되면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다. 몽땅 놓쳐버릴 것들이라 생각하면서

우리는 오늘의 밤하늘을 힘껏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행복에 잘 도착해야 할 것입니다.

매일이 부지런한 착륙의 순간이어야 합니다.

 

 

#2. 더 강렬한 쪽을 향해, 출발

_

안전하고 평화롭고 고요한 삶을 향해서만 밀고나가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강렬한 삶이라... '강렬'이란 단어만큼이나 인상적인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고통과 기쁨이 동시에 가득 넘쳐나는 삶을 살아가려면 얼마나 튼튼한 가슴을 가져야 할까요.

큰 고통을 잘 견디는 가슴은, 큰 기쁨도 잘 견딜 수 있겠지요.

매일같이 선명한 고통과 짜릿한 기쁨을 받아내는 삶은,

그 마음은 도대체 얼마나 넓고 깊어야 하는 것입니까.

나도 당신처럼 삶에 대한 담력이 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강렬한 삶 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기어이 마음이 찢기고 아물 자신이 나에게도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3. 달빛을 받아가세요

_

달을 바라보길 좋아하는 사람은 달로써 부자가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달을 바라보고 있는 이 황홀한 순간의 주인으로서 부자가 된 순간 말입니다.

그런 우리는 넉넉하다 못해 가슴에서 무언가가 자꾸만 넘치게 흘러넘치지요.

흘러넘치던 마음은 잠깐의 순간에도 제 자리에 달빛을 채워넣습니다.

정말 신비롭지 않나요. 달빛은 늘 나를 주인공처럼 여겨지도록 합니다.

그의 빛을 받아가게 하면서, 내 안의 빛이 차오르게 합니다.

 

 

#4. 두려움: 내가 나를 겁주는 상황을 일컫기도 함

_

이 페이지를 보고 있으면,

어쩌면 우리는 매일같이 스스로를 두려움 그 자체에서 구해내기 위해

열심히 애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두려움'이라는 무기를 들먹이며 내가 나를 열심히 공격하고 있는 것이지요.

보이는 두려움, 보이지 않는 두려움, 상상의 두려움, 현실의 두려움.

형체가 없는 그 미지의 세계를 극복하기 위해 매일 기를 쓰면서

무턱대고 용감해져야 한다고만 외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야간비행의 조종사들처럼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경험'과 '확신'과 '확인'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무서워한 그 의심의 골짜기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었으며

두려움이라는 것은 사실 '실체 없음'의 상태라는 것을

내가 나 자신에게 확인시켜줄 정도의 용기만 가지고

삶의 굴곡진 마디마디를 극복해나가면 되는 것 같습니다.  

 

 

#5. 난 겉으로 드러난 점수를 믿지 않습니다.

_

세상은 결함의 개수를 세며 열심히 이뤄지고 있는 모든 위대한 일들을 좌절시키려 합니다.

결함이 빚어낸 비극은 분명 명백한 비극이었으나,

그 비극은 그 결함만을 보여줄 뿐 다른 부분들까지 증명할 수는 없으니

나의 일은 계속 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리비에르의 태도가

저는 조금 무섭고 무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닮고 싶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달린 상황에서 계속되는 비극을 문제삼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방관 혹은 비열한 욕심이니 필히 경계할 필요가 있겠으나

삶에 관한 태도로 이를 치환시켜 바라본다면

그의 쿨한 태도, 한편으로는 실패에 무심하기까지 한 모습은

제 삶 안으로 좀 끌고 들어오고 싶단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겉으로 얻는 점수와 타이틀에 발목 잡히지 않아야

내가 하고 싶은 증명을 끝까지 잘 해낼 수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성공이란 것을 가려낼 수 있게 되겠지요.

 

 

 

#6. 감정의 상대적 무용

_

감정에 잘 사로잡히는 것이 득이 되는 편도 참 많지만

위험한 상황이나 문제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는

감정에 휩쓸리는 것이 대체로 득보단 실에 조금 더 가깝기도 하지요.

저는 제 감정을 현명하고 차분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풍부한 감정들을 많이 원망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자주 고마워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리비에르는 감정은 사람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글쎄요.. 저는 이성만큼이나 문제 해결에 탁월한 감성도 있다고 믿습니다. 

문제의 답이 이성에 있는지, 감성에 있는지 아는 통찰력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7. 답이 존재하지 않는 질문을 질문합니다.

_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곰곰히 생각해보게 됩니다.

인간의 목숨보다 더 값진 무엇이 분명 존재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인걸까.

이 소설 속에서 답을 찾는 다면 '영원한 문명'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제가 사는 세상 속에서 답을 찾아보자면 '계승'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리비에르는 사라져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인간의 수명을 뛰어넘어

평생 살아남을 강력한 영원성을 좇는 것 같고

저는 인간의 목숨보다 더 값진 것이란 그 목숨을 통해 우리가 계승해야 하는

어떤 고귀한 정신만이 그 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세상을 가만히 보자면,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답은 조금씩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권력이 더 값져지기도, 돈이 더 값져지기도, 명성이 더 값져지기도 하는 것을

꽤 오랜 시간동안 우리는 지켜봐왔으니까요.

답이 구해지지 않는 무언가가 늘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 맥이 빠집니다. 그것들이 과연 다 무슨 소용일까요.

 

 

#8. 해결책이 아니라 힘을 찾으세요

_

리비에르가 제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면, 바로 이런 구석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보다도 그 방법을 일으킬 체력을 더 귀하게 여기는 태도 말입니다.

그를 떠올리면 '전진'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이어집니다.

단단한 눈빛을 뿜어내며, 각오된 마음으로 한 걸음씩 또박또박 걸어나가는 사람.

제겐 그가 그런 이미지로 연상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힘만을 믿을 수 있다는 그의 말에

저는 처음으로 그가 믿음직스럽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이 장면에서만큼은 아무런 경계없이 그를 따라가고 싶어졌던 것 같습니다.

나아가는 사람.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을 보면 이렇게 쉽게 제 마음이 풀어집니다.

그의 말처럼 인생엔 명쾌한 해결책이 없고

어떻게든 나아가는 힘이 미래의 모든 소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9. 먼저 구름과 산과 강과 바다가 되는 일

_

누군가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믿음을 바라본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이겠죠.

구름과 산과 강과 바다보다 훨씬 강한 그 믿음과 용기는

오랜 밤하늘을 날고 날아 지금과 같은 항공 산업을 완성시켰습니다.

하늘을 무서워하지 않고 정답게 맞이할 수 있도록

그들이 먼저 구름과 산과 강과 바다보다 강한 존재가 되어주셨습니다. 

 

 

#10. 단어를 믿지 말고, 다시 새롭게 복귀하십시오.

_

"승리, 패배 이런 단어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오로지 전진하는 사건만이 중요하다."

이 문장들이 제겐 참 무한한 용기와 위로가 됩니다.

어떤 맥락에서는 무시무시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겠지만,

약해지고 작아지는 순간의 제겐 그 어떤 계기보다도

다시 시작해볼 큰 사건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나를 무력하게 하는 단어들이 있다면 가끔씩 그 의미를 지우고

다른 새로운 이미지들을 준비해봐야겠습니다.

어쩌면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 속 리비에르의 모습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복귀와 전진과 승리의 이미지 속에서 계속 살아남는 사람.

 

 


_

<야간 비행>이라는 책을 다 읽고 난 뒤 머릿속에 더듬더듬 기억나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책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가장 첫 페이지에 있는 구절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서 12 : 24)"

 

저는 이 구절이 책 <야간비행>을 잘 관통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이 매순간 가슴 아파서

 

싹을 틔우고, 잎을 내고, 열매 맺고, 다시 떨어지는 그 모든 순환을 멈추려는 사람들 속에서

 

어쩌면 그 죽음 하나의 의미를 가장 잘 알고 있었던 것은 리비에르는

 

그 순환이 계속되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는 것에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고 그 희생을 막으려는 사람들과

 

그 죽은 밀알로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비극 속에서도

 

순환을 밀고나가는 사람들이 공평하게 존재했기에

 

지금의 이 세상에 우리가 도착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 마음 중에 어떤 것이 더 정답이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늘 어렵고 어렵습니다.

 

다만, 그것들이 언제나 누군가의 최선이었을 것이라는 사실만 기억하려 합니다.

 

참 많은 밀알이 땅에 떨어지고 죽어서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꽃과 나무와 들판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지만, 그곳 역시 모두의 최선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그것이 밀알 하나 하나를 귀하게 여기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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