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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긋다/에세이

[책추천] 겨울에 읽으면 좋은 잔잔한 에세이 <시와 산책> (feat. 겨울 책 추천)

by _geut.da 2022.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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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긋다입니다.

 

오늘은 눈 오는 겨울을 등에 지고 함께 그 위를 산책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멋진 에세이 한 권을 추천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한정원 작가님의 <시와 산책>인데요

 

겨울이 아니어도 읽기 좋은 책이지만, 겨울에 읽으면 훨씬 더 좋은 감상을 하실 수 있으실거에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작가가 좋아하는 시와 산책의 순간들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걷지 않아도 함께 걷는 느낌이고, 그가 느끼는 세상을 함께 음미하게 되는 책입니다.

 

참 많은 페이지들에 걸려 넘어져서인지, 정말 한 장 한 장 아껴 읽은 책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제가 가장 아꼈던 페이지들을 조금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1. 상상은 도망이 아니라, 어쩌면 방문

_

삶에 환상의 몫이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누군가가 참 반가운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읽는 순간 제가 가진 아주 내밀한 믿음을 들킨 기분이었습니다.

그가 나의 믿음을 내가 잘 볼 수 있는 곳에다

단정한 글씨로 바르게 써 준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우리에게 첫 번째 세계라면, 상상은 우리의 두 번째 세계일겁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차원을 우리는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보탬이 되어주고, 또 위로가 되어주며

우리는 때때로 다리를 건너가고 오며, 더욱 튼튼해지는 것일 겁니다.

상상은 저를 강해지게 합니다. 더 잘 살아지게 합니다.

비겁한 '도망'이 아니라, 기분 좋은 '방문'입니다.

 

 

#2. 빛나는 내면을 잘 겹쳐나가면

_

가만히 세상을 살아가며 날이 갈수록 더욱 선명하게 느끼는 것은

나의 눈빛과 세상과 이 별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들이

모두 마음이 빚어내는 위대한 일같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허무해지지 않고, 쓸모를 잃지 않은 내면들이 겹겹이 쌓여

이렇게나 단단한 바깥을 이루고 있구나 실감합니다.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는 말을 읽다가

이 문장이 쌓여 만들 나의 내면이란 어떤 것일까 조금 기대가 되었습니다.

좋은 것을 먹는 것만큼이나, 좋은 것을 보고 읽고 마음 먹는 일 역시

나를 잘 돌보는 방법 중 하나겠지요.

내 눈 앞에 펼쳐진 좋은 것들에 차분히 밑줄을 그어 봅니다.

 

 

#3. 행복: 깨끗한 기쁨만이 남은 상태

_

나도 손바닥 안에 쓰여진 나의 행복을 가만히 본다.

나는 어떤 행복을 쥐었었는가. 무엇을 긋고 싶어 그렇게 열심이었는가..

행복 타령까진 아니더라도, 나 역시 행복을 열심히 구하던 자였다.

그러나 뻔한 행복을 구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 안심이 된다.

행복은 저마다 달라야 한다는 말에,

각자의 행복은 아주 은밀해야 된다는 그의 말에 안심이 된다.

행복이란 말은, 그처럼 생각하고 불러줘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정말, 우리가 꿈꾸는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고유하고도 또 고유한 기쁨의 순간. 

행복을 품는 가슴은 그렇게 고유해야 할 것이다.

깨끗하게 기쁨만이 남아야 할 것이다.

 

 

 

#4. 당신은 내게 용기를 줘요.

_

노인에게 예를 지키고, 공경하고, 귀하게 모시는 이유를

내 안에서 제대로 짚어본 적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나의 세상에선 그것이 너무나 당연했으니까.

따로 짚을 필요도,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제대로 잘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당연한 것에 깃든 타당한 이유를 알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온 마음을 다해 삶을 밀고 나간 이에 대한 존경.

내가 해내야 하는 것들을 무사히 다 해낸 사람에 대한 박수의 마음.

그런 것들이 노인들을 대하는 마음에 제대로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그들이 온 마음을 다해 왔듯이, 나도 이제 온 마음을 다해 그들을 대할 것이다.

고개를 숙이기에 앞서, 내 마음을 잘 갖춰 인사드리고 싶다.

나는 당신에게서 세월을 가로지른 용기를 본다고.

잘 도착해주셔서, 내게도 삶의 무사함을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5. 흐림은 아마도, 우정의 날씨

_

높은 것은 두렵고, 낮은 것은 편안하다.

그래서 세상의 천장이 나와 눈높이를 맞춰주는 시간,

살짝 어둠을 내리깔고 솔직한 얼굴로 내게로 가까워지는 시간이 나는 참 정겹다.

작가만큼 흐린 날을 꼼꼼하게 느끼는 편은 아니지만,

나에게 구름과 비는 세상이 나에게 털어놓는 속마음 조각들 같이 느껴진다.

'나도 하늘을 지키느라, 세상을 돌보느라 사실 이만큼이나 힘이 들었어.

 이런 나의 슬픔을 네가 조금만 알아줬음 좋겠어. 나에겐 너밖에 없어.'

하는 말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래서 흐린 날에는 나도 기꺼이 하늘의 슬픔에 동참한다.

회색보다는 조금 밝은 색의 마음으로 '괜찮아, 괜찮아' 다독거려준다.

흐린 날은 그래서 좋다. 서로가 더 솔직해지고, 우정이 더 돈독해지고

은밀한 헤아림을 서로 교환하며 그렇게

세상과 내가, 우리가 더 든든해지니 좋다.

 

 

#6. 손목엔 풍선을, 발목엔 추를

_

이 책 속에서 딱 한 장만 기억할 수 있다면,

저는 이 페이지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습니다.

진지함보다는 쾌활함이 삶을 더 전진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저는 자주 까먹는 사람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가벼움 속에 인생의 진주같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삶의 단면은 너무나도 다를 거에요.

웃음으로 시도하는 도약이란 얼마나 즐거운 경험일까요.

텅 비어있는 하얀 손목에 장난스런 풍선을 달게 만드는 문장입니다.

도약을 안전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작은 추도 잊지 말아야겠죠.

삶의 마디마다 기꺼이 떠오를 줄 아는 사람.

활자를 부르기만 해도 벌써 근사합니다.

당장 위로 출발하고 싶어질만큼요.

 

 


 

_

글을 닫는 문장으로 어떤 문장을 고민하던 찰나에, 위 페이지를 만났습니다.

 

한 권의 책으로 우리가 단번에 지혜로워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말 좋은 문장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저는 연약하고 겁도 많고 어리석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저 한 마디가 저를 붙잡았어요.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할지, 무엇을 바랄 수 있을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만 아름답게 걷고자 할 뿐이라는 말이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몰라도, 삶을 또박또박 예쁘게 걸어나가는 법은 조금 알게 된 기분입니다.

 

가는 길보다도, 그 길 위에서의 나의 걸음걸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믿게 만들었어요.

 

수많은 페이지들을 통해 작가와 산책을 하며, 이전보다 훨씬 더 발랄해진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무척 즐거운 산책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산책의 즐거움을 알게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상 기록을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긋다'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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